
한 잔의 술, 한 자락의 소리… ‘한잔의 풍류’에서 맛과 멋이 만났다. 장다나의 예술적 정신을 기리며 열린 특별한 풍류의 밤
장다나 재단, 짧지만 강렬했던 음악 소녀의 꿈을 잇다
장다나 재단(Dana Chang Foundation)은 1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음악 소녀 장다나의 예술적 열정을 이어가기 위해 설립되었다. 다나는 선천성 심장 기형을 안고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했고,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놀라운 잠재력을 드러냈다.
특히 2024년 3월 3일,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조던 홀에서 열린 보스턴 시빅 심포니 음악 콩쿠르 1등 갈라 콘서트에서의 무대는 그녀의 첫 데뷔이자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수줍은 소녀다운 감성, 그리고 놀라울 만큼 성숙한 음악성이 한데 어우러진 그날의 연주는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공명을 남겼다.
다나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부모 장승혁·송정숙, 언니 장다윤은 그녀의 꿈을 영원히 이어가기 위해 이 재단을 설립했다. 이번 행사가 열린 종로 아트홀은 다나의 이모이자 가야금 연주자인 송영숙이 2023년 월넛힐 50주년 공연에서 가야금 산조를 바이올린 협연으로 초연했던 공간이기도 해, 의미가 더욱 깊었다.

장다나 재단이 이번 ‘한 잔의 풍류’를 기획한 이유는 음악·전통·나눔이 함께 숨 쉬는 자리를 만들고, 다나가 남긴 예술적 울림을 누군가의 삶을 밝히는 길로 확장시키기 위해서다. 행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후원금은 재단을 통해 청년 예술가의 창작 활동과 어린이 심장병 연구 지원에 전액 기부된다. 재단은 “예술로 세상을 더 따뜻하게 한다”는 다나의 꿈을 현실로 이어가는 플랫폼이 되어, 풍류의 밤을 ‘예술과 사랑의 순환’으로 완성시키고 있다.

관객들은 공연 전후로 갤러리 다나에서 진행 중인 오프닝 전시 ‘Dana, Fly Again – Collector’s Collection’을 관람할 수 있었다. 전시는 장다나 재단이 마련한 첫 공식 전시로, 약 30여 점의 소장품이 공개되며 깊은 감성의 공간을 완성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일까지 계속된다.
12종 전통주와 강원도 횡성의 건강한 한 상
이날 사회는 자신을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농부”라고 소개한 김진성이 맡았다.
김진성은 “오늘 ‘한 잔의 풍류’는 우리 조상들의 마음을 열고 삶의 여유를 즐기던 풍류 정신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자리”라며 “오늘만큼은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옆에 계신 분들에게만 집중해 달라”고 인사를 건넸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이 직접 선별한 12종의 우리 전통주는 이날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청주의 청명주, 서산의 ‘간월도 달빛 따라’, 문경의 탁주 ‘문희’, 순창의 ‘지란지교’, 평택의 대통령상 수상주 ‘천비향’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술들이 자리했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
강원도 횡성에서 ‘미듬 손두부’를 운영하는 홍해영·이민영이 준비한 건강한 음식도 전통주와 조화를 이루며 참석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백혈병을 앓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몸을 살리는 음식’을 만들고자 하는 두 사람의 철학이 담긴 메뉴로 구성됐다.
가야금·아쟁·대금·피리·거문고·판소리… 풍류를 채운 라이브 무대
첫 무대는 가야금 연주자 이인영·신정하가 들려준 ‘광화문 연가’와 ‘인연’의 가야금 연주였다. 이어 선릉아트홀 송영숙 대표가 합류한 ‘아리랑 민요 연곡’, 피아니스트 김나현의 베토벤 소나타 4번, 대금과 피아노의 이중주 ‘비익련리’ 추노 OST 연주가 차례로 무대를 채우며 공연장은 따뜻한 호응으로 가득했다.

서수진의 서용석류 아쟁산조
서수진의 서용석류 아쟁산조는 한층 깊은 울림을 남겼다.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닮은 악기”라 불리는 아쟁의 음향은 굵고 깊은 선율로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거문고 병창 ‘적벽가’ 중 조자룡 활 쏘는 대목, 판소리 ‘흥보가 박 타는 대목’, 까지 이어진 국악 무대는 전통의 깊이와 현대적 감성을 동시에 보여줬다. 사회자는 “가야금은 몇 줄일까요?”, “해금은 몇 줄일까요?” 같은 깜짝 퀴즈를 섞어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풍류의 현장을 만들어냈다.
관객을 울린 윤진철 명창의 '사철가'
명창 윤진철은 무대 인사에서 “우리 술은 세계적 수준이며, 진정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록담 소장의 술을 처음 마신 순간을 떠올리며 “한 모금이 아까울 만큼 깊은 맛이었다”고 말해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윤진철 명창
그리고 관객들의 요청에 응해 즉석에서 부른 단가 ‘사철가’는 윤 명창 특유의 구수한 입담과 국보급 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공연장의 공기를 단숨에 압축시켰다. 삶의 무게와 인생의 깊이가 담긴 사철가의 감성은 몇몇 여성 관객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고, 명창의 한 소절은 풍류의 본뜻을 되새기게 하는 순간이었다.
예술과 기부가 만난 자리
‘한 잔의 풍류’는 예술을 즐기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미래를 밝히는 시간이었다. 참석자가 마신 한 잔의 전통주, 들었던 한 곡의 음악, 전시장에 머문 분의 시간이 모두 기부로 이어져, 예술적 가치를 나눔으로 확장시키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한 잔의 술, 한 곡의 음악, 한 점의 예술이 누군가의 내일을 밝히는 빛이 되는 자리, 짧지만 찬란하게 살다 간 음악 소녀 장다나는 이렇게 또 다른 예술가들의 꿈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한 잔의 풍류’는 전통과 예술, 그리고 나눔이 어우러지는 진정한 의미의 풍류의 밤으로 완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