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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은 경복궁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 무속인 이화선, 4년째 ‘단종대왕제’ 올리는 사연

 

 

“단종은 경복궁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 무속인 이화선, 4년째 ‘단종대왕제’ 올리는 사연

 

최근 단종을 둘러싼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무속인 이화선이 자신과 단종의 인연과 4년째 이어오고 있는 ‘단종대왕제’의 의미를 밝혔다. 단종에 대한 재조명이 사회적 흐름으로 확산되는 시점에서 개인 신앙을 넘어 역사적 기억과 집단적 정서를 환기하는 하나의 문화적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화선은 32세에 신내림을 받은 이후 약 14년간 무업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신병을 크게 앓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이 대신 큰 고통을 겪었다”며, 부모의 사업 실패와 생계의 붕괴 속에서 결국 자신이 신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가족을 먼저 살려야 다른 이들의 삶도 도울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가 단종과의 인연을 본격적으로 인식한 것은 신을 모신 직후가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였다. 반복적으로 ‘천신도령’의 존재를 느끼면서도 그 실체를 알지 못했던 그는 태백산 천제단에서의 기도를 계기로 단종대왕과의 연결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밝혔다.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고, 어느 순간 단종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체험은 이후 그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꿈과 기도 속에서도 단종의 존재는 구체화됐다. 그는 “중고등학생 또래의 남자가 보였는데, 너무 애잔하고 처참한 느낌이었다”며 “이후 ‘단종대왕제를 해야 한다’는 말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먹고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국가적 제의를 감당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었지만, 결국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고 덧붙였다.

 

이화선이 단종대왕제를 시작한 배경에는 영적 감응과 함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인식도 작용했다. 그는 “당시 나라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기도를 받았고, 단종대왕제를 올려야 한다는 강한 압박이 있었다”며 “이는 말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는 감응이었다”고 설명했다. 무속에서 말하는 ‘실린 상태’ 속에서 일상을 이어가며 결국 제의를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단종대왕제는 그의 사비로 이어져 왔다. 1회와 2회는 삼각산 천신국당에서, 이후 3회부터는 인왕산 국당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많은 시민과 함께하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도 존재했다. 그는 이제 보다 열린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정서를 나눌 수 있는 제의를 꿈꾸고 있다.

 

 

이화선은 “단종은 경복궁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광화문 일대에서 백성과 함께하는 제의를 희망했다. “1년에 한 번이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위로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그의 표현은 단종을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닌 현재적 존재로 인식하는 시선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이화선은 인터뷰 이후 추가로 입장을 전해왔다. 그는 단종과의 인연에 대해 “저는 전주이씨, 성종대왕의 자손”이라며 “조상줄로 기도를 하다 보니 단계적으로 인연이 이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제자로서의 의무로 단종대왕제를 4년 전부터 올려왔고, 첫 제를 올릴 당시 ‘3~4년 뒤에는 경복궁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공수를 받았다”며 “지금의 흐름이 그 공수와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단종이 이 시대에 바라는 점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단종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백성과 함께하는 ‘정식 복위’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치적 정서와 현실을 되짚어 보려는 뜻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화선이 말하는 ‘정식 복위’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선다. 그는 “영월에서 경복궁으로 귀향하는 것, 그리고 그 제를 매년 경복궁이나 광화문에서 이어가는 것이 우리가 함께 이루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단종의 넋을 위로하는 차원을 넘어 역사적 복권과 공동체적 기억의 회복을 의미한다.

 

아울러 그는 개인적 신앙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도 함께 전했다. “한 맺힌 신의 소리는 무녀인 제가 듣지만,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몫”이라며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이바지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단종대왕제를 보다 공적인 문화행사로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굿이 단순한 종교 의례를 넘어 연희와 춤, 소리, 관현악이 결합된 전통예술로 확장될 가능성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이는 무속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고, 현대적 문화 콘텐츠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와 맞닿아 있다.

 

 

이화선 역시 이러한 방향성에 공감하며 “무속이 전통예술과 만나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단종이 영화와 대중문화 속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지금, 단종대왕제가 집단적 기억과 치유의 장으로 기능할 가능성도 함께 제기된다.

 

단종이라는 역사적 인물, 무속이라는 전통적 신앙, 그리고 현대 대중문화의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화선의 단종대왕제는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의 말처럼, 단종이 “경복궁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면”, 그 귀향의 길은 개인의 제의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기억과 참여 속에서 완성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화선 역시 이러한 가능성에 공감했다. 그는 무속이 전통예술과 만나 더 넓은 공감대를 만들 수 있다는 의견에 “너무 좋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단종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영화와 대중문화 속에서 다시 소환되고 있는 지금, 제의 또한 단순한 무속행위를 넘어 집단적 기억과 치유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기대가 읽힌다.

 

 

무엇보다 이번 인터뷰에서 드러난 것은 이화선이 단종을 ‘한 많은 왕’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잃어버렸던 유년 시절의 혼이라도 달래고 싶다”며, 단종의 넋을 위로하는 일이 결국 “나라가 잘 되고 국민도 잘 사는 길”과 닿아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단종 개인의 비극을 넘어, 시대의 상처와 공동체의 정서를 어루만지는 제의로 단종대왕제를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대중문화 속 단종의 재부상, 무속 현장에서 이어져 온 단종대왕제, 그리고 이를 보다 넓은 시민적·문화적 공간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앞으로 이 제의가 어떤 방식으로 진화할지 관심이 쏠린다. 이화선의 말처럼, 단종이 정말 “경복궁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면”, 이제 그 넋을 맞이할 자리는 더 넓고 더 열린 공간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데헌’의 골든 공연 중 세 명의 무녀 역할의 무용수가 북소리에 맞춰 전통무를 선보인 장면이 전 세계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는 우리 전통예술의 깊은 정서와 에너지가 세계를 울릴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으로, 그 뿌리가 무속 신앙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무속인들 역시 개인의 영달을 넘어 사회와 나라를 향한 공동체적 역할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통의 근원으로서 무속이 어떤 방식으로 현대 사회와 접점을 이루고, 문화적 자산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