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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17]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기획연재 17]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춤이 된 인생

 

천상 광대

 

어느 날, 열두 살의 이동안 앞에 나타난 남사당패는 그 많은 패들 중에서도 하필이면 가장 크게 유명세를 떨쳤던 정화춘이 모가비로 있는 남사당패였다. 나도 몰래 연희에 홀려 따라나선 것이 어언 3년, 패거리의 스승 임종성에게 줄타기와 땅재주를 배워 새미舞童 노릇을 하며 조선팔도를 돌다가 그날은 황해도의 한 놀이판이다. 줄 위에 올랐는데 저쪽의 한 아비가 탄식을 내뱉는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어쩌랴. 타고난 팔자, 너는 천상 광대로구나!”

 

이 탄식이 가득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동안의 아버지 이재학이다. 집을 나간 자식을 찾아 수소문 끝에 간신히 만난 아들은 줄을 타고 있었고, 아비는 아들의 손을 잡고 과천 땅 언저리 찬우물이라는 곳을 찾아간다. 찬우물은 줄타기 재주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의 이름이다.

 

이동안 선생은 이 찬우물에서 줄타기 명인인 김관보 선생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줄타기를 배운다. 이를 시작으로 당대 최고의 춤꾼이었던 김인호 선생에게 무려 10년에 걸쳐 본격적인 춤 수업을 받게 된다. 이즈음 수업 중이던 어느 날, 광무대 최고의 흥행사였던 박승필의 눈에 띄어 을지로 5가에 있던 국극전용극장인 광무대光武臺에 출연하게 된다.

 

이 출연을 시작으로 원각사圓覺社, 문락정 등의 극장에 출연하면서 재인청의 장단은 물론, 발탈의 명인 박춘재(朴春在, 예명 朴八封), 남도 잡가의 소리꾼 조진영趙鎭英, 태평소의 명인 방태진方泰鎭, 대금·피리·해금의 명인 장점보張点寶 등 당대 명인들에게 전수받은 것은 그야말로 가무악 전반에 걸친 우리 전통예술의 정수였다.

 

선생의 이러한 전수의 여정은 과거 그 광범하고도 엄격했던 재인청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것과 같은 자격을 부여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재인청 조직의 수장에게 부여되는 도대방都大房이라는 명예의 호칭에 ‘마지막’을 붙여 이동안 선생에게 마지막 도대방이라 일컬은 것도 일견 타당했던 셈이 된다. 선생께선 생전에 ‘마지막 광대’와 함께 ‘마지막 도대방’이란 이 수식을 좋아하셨으니 말이다.

 

돌이켜보건대 멀리 저 신라로부터 일어선 광대의 여정은 비록 시대가 야기시킨 각종 천대와 멸시의 역사 속에서도 꼿꼿이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전통예술과 예맥의 전승이라는 과업을 수행한 유일한 예인집단이 재인청이었다. 더불어 이동안이라는 천상 광대가 생애 전부를 바쳐 거기 서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꼭 기억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덧붙여서 사진 한 장을 소개한다. 이 사진을 발견한 것은 이 책의 원고가 출판사로 넘어가 교정본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태평무 관련 자료를 정리하던 중, 스승의 마지막 여인이셨던 안남국 사모님이 나에게 유물로 건네주셨던 뭉치 속에서 발견한 것이다. 정체불명의 잡지에서 오려낸 이 사진에다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줄 위의 승무’라 할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해상도가 너무 낮아 안타까워하던 중에 애제자 박소은 양이 간결한 소묘로 선명성을 살려낸 것이다.

 

 

박소은 양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내게 춤을 배운 아주 성실한 친구였다. 무용과 진학을 목표로 정진하다가 갑자기 미술 전공으로 진로를 급선회하여 내 마음을 안타깝게 만든 친구다. 서울대 미대에 합격하고서는 인사차 찾아와서 이르기를 그림을 통해서라도 우리 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더랬다. 기특하게도 그 약속을 이번에 지킨 것이다.

 

다음의 사진은 1970년대 초반, 부산의 어느 공원에서 연희되는 장면으로 추정된다. 도무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줄타기 재주와 승무가 동시에 연희되는 현장이라니! 생전의 선생께서는 이런 그림과 같은 연희를 자랑하시곤 했다. 내가 이 사진에 애착을 갖는 것은 전통의 재인청 광대들은 가무백희를 익히고 연희한 만능 엔터테이너였다는 증좌이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찍은 분은 사진작가로 큰 족적을 남기신 고 정범태 기자이다. 그의 사진으로 인해 4·19 학생혁명이 촉발되었고, 서울역 압사사건을 비롯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보도사진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우리 전통예인들의 사진들이 그의 손에서 수없이 포착되고 역사적 기록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일반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은 필자의 스승 이동안 춤꾼이시다. 춤은 재인청 태평무로 이 춤은 재인청 예인 집단이 빚어낸 최상의 춤이다. 수많은 재인 예인들이 추었고 추었을 태평무가 다다를 수 있는 최상의 순간을 포착해낸 사진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왜 최상의 순간인가 묻지 마시라. 이 사진을 보여드리는 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내게는 없다. 이 장면이야말로 이동안 선생이 천상 춤꾼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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