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기록이 미래의 예술을 빚다: 의궤, 230년 전의 숨결을 깨우다
문화 칼럼니스트
김승국
조선 시대 국가 행사는 단순한 잔치를 넘어 '예악(禮樂) 통치'의 구현이었다. 그 찬란했던 현장을 오늘날 우리가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조정의 모든 절차를 치밀하게 갈무리한 기록 문화의 정수, '의궤(儀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1795년, 정조대왕은 비운에 간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그리움을 승화시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를 기획했다. 2월 9일 창덕궁을 나선 장엄한 행렬은 13일, 화성행궁의 '봉수당(奉壽堂)'에 다다랐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지극한 효심의 공간이었다.
첨단 공연 시설 '보계'와 77인의 메가 프로듀싱
당시의 무대는 봉수당 대청마루에 좌판을 덧대어 만든 임시 무대인 '보계(補階)' 위에 펼쳐졌다. 이는 오늘날의 야외 특설 무대와 같으나, 수많은 악기와 연주자, 무용수의 무게를 견뎌낼 만큼 견고하고 웅장하게 설계된 당대 최고의 첨단 공연 시설이었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인 '봉수당 진찬연'의 상세 과정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를 보면 그 규모는 가히 압도적이다. 출연자 모두의 무대 위 역할은 물론 이름, 나이, 소속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혜민서 소속 여령 16명과 화성유수부의 여기 15명 등 총 31명의 무용수가 무대를 수놓았다.

여기에 장악원 악공과 장용영 세악수 등 46명의 연주단이 뒷받침했다. 총 77명의 출연진이 대규모 관현악 편성에 맞춰 춤사위를 펼친, 그야말로 조선판 '초대형 융복합 예술 콘텐츠'였던 셈이다.
통치 철학과 예술의 만남, 완벽한 국가 브랜딩
공연 레퍼토리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노래한 '여민락(與民樂)'을 비롯해 '수제천', '보허자', '낙양춘' 등 장엄한 음악으로 가득 찼다. 또한 신선이 왕실의 장수를 기원하는 '헌선도', 건국의 상징인 '몽금척',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하황은'을 비롯해 '학무', '처용무', '무고' 등 상징성 높은 정재(呈才)들이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국왕의 통치 철학과 효(孝)의 가치를 예술로 승화시킨 완벽한 ‘브랜딩’이었다.

기록은 과거의 창고가 아닌 미래의 설계도
이 지점에서 우리는 기록의 위대함을 다시금 복기하게 된다. 기록은 과거의 정보를 보관하는 창고를 넘어, 그 정보를 토대로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하는 진화의 토대다. 의궤라는 정교한 텍스트가 있었기에 우리는 230년 전의 숨결을 현대적 공연 콘텐츠로 부활시킬 수 있었다.
현대의 공연예술 종사자들 역시 이 기록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오늘의 무대를 정교하게 기록하고, 공연 후의 성찰을 남기는 행위는 미래의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가장 친절한 초대장이기 때문이다. 기록되지 않는 예술은 찰나로 사라지지만, 기록된 예술은 의궤처럼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