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북과 사물이 만나는 새로운 실험, 국악연주단 아리, 2025 기획공연 「소리북과 사물을 위한 놀이」
전통은 늘 과거와 현재가 마주하는 지점에서 새 생명을 얻는다. 오는 8월 29일(금) 저녁 7시, 대전예술가의집 누리홀에서 열리는 국악연주단 아리의 기획공연 「소리북과 사물을 위한 놀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판소리의 든든한 반주 악기인 소리북과 충청의 대표 연희인 웃다리 사물놀이가 만나 리듬과 울림의 확장을 모색하는 자리다.
국악연주단 아리는 ‘명인초청 시리즈’, ‘판소리 5바탕 시리즈’, ‘악기와의 만남’ 등을 통해 소리북 연주의 확장 가능성을 꾸준히 탐구해왔다. 이번 기획공연은 그 탐구의 연장선이자, 나아가 전통 리듬을 기반으로 한 동시대적 음악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첫 무대인 ‘다스름’은 전통음악에서 본격 연주 전 호흡과 장단을 가다듬는 짧은 준비곡이다. 이번 무대에서는 소리북과 장구, 사물북, 징이 함께 호흡하며 전통적 의미의 ‘워밍업’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한다. 호흡을 맞추는 과정이 단순한 예열이 아니라 독립된 음악적 순간으로 제시되는 점에서, 관객은 무대의 첫 장면부터 긴장과 해방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두 번째 무대는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인 박근영 명고가 작곡한 「운우화락」은 삼도설장구의 가락을 소리북으로 풀어낸 창작곡이다. 구각리·삼채·동살풀이 등 전통 장단이 소리북의 울림과 만나 견고하면서도 폭넓은 타악 앙상블을 들려준다.
박근영 보유자는 대전무형유산 판소리고법의 전승자로, 수십 년간 판소리 반주의 정통 고법을 이어온 명고다. 그는 전통 판소리 장단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남다른 안목을 보여왔다. 「운우화락」은 이러한 그의 예술관이 집약된 작품으로, 전통 리듬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고, 소리북의 독자적 가능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마지막 무대는 충청지역 전통 웃다리 농악을 바탕으로 한 소리북과 사물놀이의 협업 무대다. 웃다리 장단 특유의 여유와 흥취 위에 소리북의 주가락이 얹히며, 판소리 반주와 농악의 합주가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순간이 펼쳐진다. 전통 장단인 7채, 6채, 삼채 등이 소리북의 연주와 합쳐져 새로운 역동성을 창출하며, 전통의 계승과 동시대적 재해석을 동시에 담아낸다.
참여진 역시 든든하다. 소리북에는 권은경, 강예진, 이상미, 신동선 등 대전무형유산 판소리고법 이수자들이 함께하며, 사물놀이는 김기홍, 김기호, 조동균, 이재서 등 차세대 타악 연주자들이 무대를 채운다. 각자의 전공과 기량이 서로 어우러지며, 전통의 맥락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내는 ‘협업의 미학'이 기대된다.
이번 공연은 전통과 창작, 판소리와 농악, 무형문화재와 현대 무대예술이 만나는 실험적 시도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특히, 전승과 창작을 동시에 견인하는 박근영 보유자의 참여는 이번 무대의 무게감을 더한다.
국악의 전통적 뿌리를 지키되, 그 안에서 미래를 모색하는 시도야말로 오늘날 국악이 나아가야 할 길일 것이다. 「소리북과 사물을 위한 놀이」는 그 길 위에서 던져진 하나의 대담한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