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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방송] 9월 ‘이달의 국악인’ 기산 박헌봉 선생 선정, 국악예술학교 설립과 팔도 민요 채록, 국악 중흥운동의 큰 별

(왼쪽부터) 이일남 선생, 기산 박헌봉 선생, 박범훈 교수

 

국악방송, 9월 ‘이달의 국악인’ 기산 박헌봉 선생 선정, 국악예술학교 설립과 팔도 민요 채록, 국악 중흥운동의 큰 별

 

국악방송(사장 원만식)이 연중 특별기획 ‘이달의 국악인 : 별, 기록으로 만나다’ 9월의 주인공으로 기산 박헌봉 선생(1907~1977)을 선정했다. 국악 중흥운동의 기수로, 국악예술학교 설립과 팔도 민요 채록, 후학 양성에 일생을 바친 거목의 삶을 조명하는 자리다.

 

국악예술학교, 체계적 교육의 초석

 

경남 산청 출신의 박헌봉 선생은 진주에서 음률연구회를 조직하며 국악 연구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정악전습소에서 아악을, 성악연구회에서 소리를, 조선악부에서 민속음악을 익히며 국악 전반을 폭넓게 연구했다.


특히 1960년 국악예술학교를 창립하고 초대 교장으로 취임, 후학 양성에 헌신했다. 그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체계적인 교육과 전승 시스템을 마련하며 국악 교육의 초석을 다졌다. 이 학교를 통해 길러진 인재들은 훗날 한국 국악계의 중심 인물로 성장했다.

 

팔도 민요 채록과 국악의 대중화

 

박헌봉 선생은 국어국문학회와 공동으로 팔도 민요 채록 사업을 추진, 강원·경상·전라·제주 등 전국을 돌며 270여 곡의 민요를 수집했다. 이 자료들은 KBS 라디오 ‘민요를 찾아서’를 통해 방송되며 대중적 반향을 일으켰고, 민속음악의 기록적 가치를 후대에 전했다.


가야금 병창곡 ‘내 고향의 봄'의 가사를 쓴 임일남 선생과의 협업은 당시 국악계에 큰 울림을 남겼으며, 이는 국악이 문학과 어우러져 대중에게 다가가는 중요한 발걸음이었다.

 

박범훈 교수, 사제의 인연으로 이어간 뜻

 

박헌봉 선생이 남긴 발자취는 제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그중 동국대학교 석좌교수이자 작곡가 박범훈 교수는 박 선생과의 사제 인연을 통해 국악의 학문적 체계와 교육 철학을 깊이 이어받았다.


박 교수는 국악관현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국악의 현대화와 세계화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이번 방송에서 그는 스승의 가르침과 철학을 증언하며, 박헌봉 선생이 강조했던 “교육을 통한 국악의 미래”가 어떻게 오늘날 국악계에 뿌리내렸는지를 생생하게 전한다.

 

국악을 위해 살아온 인물

 

시인 박목월은 시 ‘누구의 것이랄 것도 없는’에서 박헌봉 선생을 “겨레의 신명과 하소연을 보듬은 인물”이라 표현했다. 한 시대의 음악적 울타리가 되어 민속음악과 교육을 잇고, 국악 중흥운동에 헌신한 그의 삶은 오늘날 국악계가 다시 새겨야 할 본보기다.

 

‘이달의 국악인 : 별, 기록으로 만나다’는 국악방송 FM(수도권 99.1MHz 등 전국 방송)을 통해 매일 오전 8시 48분과 저녁 7시 24분 두 차례 방송되며, 덩더쿵 앱을 통해서도 실시간 청취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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