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조의 본류를 관현악으로 되살리다 -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긴산조 협주곡Ⅱ》
국립국악원(원장 직무대리 강대금) 창작악단(예술감독 권성택)이 오는 10월 26일(일) 오후 5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긴산조 협주곡Ⅱ》를 선보인다. 지난해 초연된 시리즈의 두 번째 무대로, 산조의 전 바탕을 국악관현악과 협주 형식으로 엮어낸 새로운 시도다. 이번 공연에서는 박범훈류 피리산조 협주곡과 성금연류 가야금 긴산조 협주곡 〈사계〉가 초연된다.
‘산조(散調)’는 느린 진양조에서 빠른 자진모리까지 이어지는 긴 호흡의 기악 독주곡으로, 연주자의 예술성과 악기의 특성이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장르다. 근래에는 무대 형식상 일부 장단만 발췌해 연주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은 산조의 본래 형식과 미학적 깊이를 되살리기 위해 각 유파별 산조의 창시자 또는 계승자와 협업해 ‘산조 전 바탕 협주곡’ 시리즈를 기획했다.
올해 공연은 특히 국립국악원과 국립극장이 공동 주최로 마련되어, ‘국립국악원 기획공연’이자 ‘2025-2026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작’으로 선정되었다. 두 기관의 협력으로 산조의 전통과 창작의 접점이 한층 확장된다.
‘박범훈류 피리산조’는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박범훈이 스승 지영희(1909~1980)의 경기시나위 가락을 바탕으로 창시한 산조다. 이번 공연에서 박범훈은 자신의 산조를 직접 협주곡으로 작곡하고 피리 협연까지 맡는다. 유파의 창시자가 작곡가이자 협연자로 참여하는 보기 드문 무대로, 전통 산조가 관현악과 어우러져 새로운 양식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한 인물이 완성하는 전무후무한 사례가 될 전망이다.
박범훈은 피리 연주자이자 작곡가, 지휘자, 교육자, 행정가로서 국악계 전반에 큰 족적을 남겨왔다. 이번 작품은 음역이 좁은 피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조성과 특수 주법을 활용한 점이 특징이며, 연주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섬세한 호흡과 가락이 관현악 속에서 살아 숨쉰다.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는 가야금 명인 성금연(1923~1986)이 스승 안기옥(1894~1974)의 산조를 토대로 완성한 대곡으로, ‘말없는 판소리’라 불릴 만큼 서사적 구조가 뚜렷하다. 이번 무대에서는 작곡가 박영란(수원대학교 교수)이 이 산조를 협주곡 〈사계〉로 재창작했다.
작곡가 박영란은 미국 메릴랜드주립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아르코창작음악제 국악관현악 부문에 선정된 경력을 가진 음악인으로, 전통의 맥락을 현대적 어법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는 성금연류 산조의 선율을 단순 편곡에 그치지 않고, 봄·여름·가을·겨울의 순환 구조 속에 산조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엮어냈다. 협연자로 나서는 지성자(전북 무형유산 가야금산조 보유자)는 성금연의 장녀이자 제자로, 팔순의 나이에 어머니의 산조를 현대 협주곡으로 되살리며 음악적 유산의 감동을 전한다.
이번 공연은 부부 국악명인 지영희와 성금연의 예술적 유산이 각각 제자와 딸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피어나는 무대다. 권성택 예술감독은 “지영희·성금연 두 분의 유산이 사제와 모녀를 통해 협주곡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며 “토막소리가 아닌 산조의 전 바탕을 긴 호흡으로 감상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기획공연 《긴산조 협주곡Ⅱ》는 오는 10월 26일(일) 오후 5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다. 예매는 국립극장 누리집(www.ntok.go.kr) 또는 NOL 티켓(tickets.interpark.com)에서 가능하며, R석 5만원, S석 3만원, A석 2만원이다. 문의 02-580-3300.
《긴산조 협주곡Ⅱ》는 산조의 복원을 넘어, 전통의 생명력을 오늘의 무대 언어로 확장한 예술적 실험이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은 산조의 본질인 ‘즉흥과 호흡’을 대규모 관현악 속에서도 잃지 않으면서, 전통과 창작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새로운 국악관현악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박범훈과 지성자, 두 연주자는 각기 다른 악기와 세대를 대표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음악적 맥은 하나다. 스승과 제자, 어머니와 딸,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이 무대는 ‘산조’라는 이름 아래 국악이 지닌 서정과 철학을 다시 묻는다. 국악의 현대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전통의 진정한 계승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이 시대의 국악인들에게 본 공연은 한 편의 대답이자, 한 장의 새로운 악보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