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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감춰진 풍속화의 역사, 무대로 되살아나다 - 창작판놀음 ‘기산, 시간을 그리다’

기산의 풍속화가 무대에서 깨어나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감각적 공연
기산과 서광일, 예술로 이어진 인연

 

감춰진 풍속화의 역사, 무대로 되살아나다 - 창작판놀음 ‘기산, 시간을 그리다’

 

전통예술의 뿌리를 무대로 소환한 공연 ‘기산, 시간을 그리다’가 인천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풍물과 연희를 기반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온 잔치마당(대표 서광일)이 창단 33주년을 맞아 내놓은 이 작품은, 세계 15개국에 1,500여 점이 흩어져 있는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를 생생한 공연 언어로 재창조하며 의미 있는 역사 복원을 시도했다.

 

서광일 대표는 “기산 김준근은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지 불과 40년 남짓이며, 그의 작품은 줄타기, 탈놀이, 검무 같은 우리의 생활과 전통을 누구도 기록하지 않던 시절에 세상에 남겼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천 개항장에서 활동했던 기산의 그림을 현재의 무대예술과 결합해 우리 정체성을 다시 조명하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또한 국악평론가 윤중강이 세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본격 제작에 착수한 작품임을 밝히며, “관객 여러분의 추임새가 공연의 완성도를 높일 것”이라며 뜨거운 호응을 요청했다.

 

서광일 대표

 

유정복 인천시장은 축하 영상을 통해 “전통과 현대가 조우한 융합형 무대가 도시 정체성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문화도시 인천을 위한 적극적 지원 의지를 전했다.

 

이번 공연은 기산의 붓끝에서 태어난 인물들인 줄 위의 광대, 검을 든 무예인, 흥을 이끄는 풍물패가 ‘지금 이곳’의 무대 위에서 다시 뛰고 노래한다. 쌍검대무는 기산의 채색감과 춤사위를 최대한 복원하여 그림 속에서 갓 걸어나온 듯한 생동감을 연출했다.

 

 

 

팔탈춤과 연희는 전통적 해학과 신명을 잃지 않으면서도, 공간 구성과 동선으로 현대극적 구조를 가미해 관객 몰입도를 높였다. 광대 줄타기는 고난도 테크닉과 극적 긴장, 해학적 표현이 한데 어우러지며, 전 세대 관객에게 통할 수 있는 보편적 감동을 전했다.

 

 

서사의 중심은 시간의 왕복이다. 1883년 개항장 인천과 2025년 현대 인천이 예술을 매개로 연결되고, 관객들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응시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다만 장면 전환의 응집력이 조금 더 보완되었다면, 서사적 긴장과 예술적 설득력이 더 단단해졌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함께 남는다. 그러나 이는 작품의 높은 의도와 시도가 빚어낸 고급스러운 아쉬움이다.

 

이번 작품은 문화사적·예술사적 가치가 분명하다. 첫째, 기산 김준근이라는 인물을 수출용 화가, 이국 취향의 화풍 정도로 축소해 온 기존의 편견에서 구출했다. 둘째, 전통연희가 단순 볼거리가 아닌 영상·조명·연기·서사와 결합할 수 있는 고급 예술매체임을 명확히 입증했다. 셋째, 인천이라는 도시가 지닌 개항의 역사성과 전통예술의 접점을 다시 설정했다.

 

특히 윤중강 평론가는 프로그램북에서 기산 김준근과 서광일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존재들이다. 한 사람은 조선의 생활과 전통을 세계에 기록한 화가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풍물이 삶 그 자체인 연희예술가다.”며 “이 만남은 서로의 예술성과 역사적 위치를 확인하고 호출하는 호명이며, 한국 미술사와 국악사에서 반드시 재조명되어야 할 두 이름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 중요한 공연이다.”라고 밝혔다.

 

서광일 대표와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의 이번 성취는 앞으로 제2, 제3의 서광일, 그리고 미래의 기산 김준근을 탄생시킬 든든한 기초가 될 것이다. 창의성과 뚝심, 그리고 한국적 상상력이 결합된 이러한 작품이 지속적으로 탄생하기를 강력하게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