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경기춤연구회 ‘서울 경기 춤 100년’, 구전심수로 이어온 서울경기춤의 정통, 무대 위에서 다시 숨 쉬다
서울경기춤연구회(이사장 김미란, 예술감독)가 지난 10월 26일 서울아트센터 도암홀에서 ‘서울 경기 춤 100년 – 지속의 몸, 사유의 시간’을 개최했다. 서울·경기 춤을 지탱해 온 명무 다섯 명이 한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적 의미가 충분했지만, 이 공연은 단지 전승된 춤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사회를 맡은 윤중강 평론가는 공연의 개막과 함께 “지금 이 무대는 법고창신, 명불허전을 한눈에 보여주는 현장”이라며 “스승의 정신을 몸에 새기고 시대에 맞게 확장해 온 다섯 명의 춤이 대한민국 전통춤의 현재를 가장 정확하게 증명한다”고 말하며 공연의 깊이를 단번에 관객에게 전달했다.

‘법고창신, 명불허전’이라는 이름처럼 원형을 기반으로 새로움을 만들며 계보의 뿌리를 존중한 작품들이 올려졌다.
전은경 명무는 정재만 선생에게 사사한 한영숙류 살풀이를 통해, ‘원(原)-본(本)-신(新)’으로 이어지는 태평무 계보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보여주었다. 그는 “정재만 선생님은 언제나 원형을 기반으로 깊이를 채우고 이후 자신만의 맛을 더하라고 하셨다”며 “스승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춤을 연구하고 이어가겠다”고 밝혀, 전승자로서의 책임감을 드러냈다.
이어진 정주미 명무의 엇중머리 신칼대신무는 재인청 도대방 이동안 선생의 예술 세계를 무대에 헌정하는 작품이었다. 그는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산 자의 춤, 스승님의 마지막 바람을 기억하며 추는 춤”이라 말했고, 윤중강 평론가는 “부채를 놓고 절을 올리는 장면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 전승의 품격이 온전히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이화숙 명무는 “시대가 달라져도 춤의 품격은 지켜져야 한다”는 말을 그대로 몸으로 증명했다. 이화숙 명무의 무대는 정갈한 가야금 선율과 함께 시작되었다. 흔히 ‘가야금=여성’이라는 익숙한 등식이 성립되곤 하지만, 그의 춤은 그 범주를 넘어 가야금의 결을 따라 흐르는 여성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드러냈다. 송범 선생의 품격과 국립무용단 특유의 절제미를 자기화하여 재구성한 산조춤 '애상(愛像)'을 선보였다. ‘사랑의 형상’을 뜻하는 제목처럼 따뜻하고도 절절한 감정의 여백이 흐르는 가운데, 강선영류 태평무에서는 기품과 감정의 밀도를 동시에 보여주며 시대를 관통하는 한국 여성 미학의 단단한 중심을 무대 위에 세웠다.
한혜경 명무는 김취홍계 오천향류 12체 장구춤을 통해 흥 속에서도 넘치지 않는 조화, 즉 “춤은 마음을 실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드러냈다. 특히 “우아함이 장구춤의 핵심”이라는 그의 말은 예술적 자존심이 담긴 선언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마지막 무대에 선 서영님 명무의 조용자 선생 장구춤 재현은 이 공연이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진정한 ‘복원’과 ‘재창조’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윤중강 평론가는 “1950~60년대 한국무용사의 중심에는 조용자가 있었다”며, 당시 국립무용단이 창단될 때 단 한 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었는데 그가 바로 조용자였음을 강조했다.
그는 조용자 선생이 영화 <낙동강>을 통해 남긴 기록을 언급하며, “하얀 의상으로 낙동강 앞에 선 조용자 선생의 모습은 지금 봐도 압도적이며, 한국춤의 정체성을 무대에 각인한 혁명적 춤사위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국립 예술의 시작점에 선 이름, ‘장구춤 하면 조용자, 조용자 하면 장구춤’이라는 방정식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고 단언하며, 서영님 명무의 공연을 통해 “잊히기 직전의 역사와 미학이 오늘 이 무대 위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고 관객들에게 그 의미를 깊게 전달했다.

윤중강 평론가는 공연 말미에 프로그램북을 들어 보이며 “이 자료에는 다른 문헌에서 찾을 수 없는 계보와 사사 철학, 전승의 핵심이 담겨 있다. 춤을 공부하는 이들이 반드시 소장해야 할 전문 기록”이라고 강조하고, 이번 무대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전승·교육·기록이라는 한국춤 생태의 본질적 가치를 함께 아우른 성과임을 짚었다. 또한 최혜리 연구자의 리서치와 유인상 음악감독이 이끄는 전통연주자들의 공감각적 호흡, 윤종현 총연출의 세밀한 구성력 등 모두가 함께 이루어낸 성취라 평가하며, 특히 “내일의 세대를 위해 엄마 같은 역할”을 해온 김미란 예술감독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그의 사회를 마무리했다.
이날 공연을 지켜본 김승국 전통문화컨텐츠연구원장은 “국가 무형유산 제도는 소중한 전통을 보호해 왔지만, 그 이면에서 수많은 귀한 춤과 명무들이 역사 속 그림자로 남게 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는 지정 여부와 관계없이 전통을 이루는 모든 예술적 자산이 포용되는 생태계가 마련되어야 한다”며,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지 못한 전통춤과 전승자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 정책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서울경기춤연구회는 서울·경기 춤의 정통성을 기반으로 미래 세대에게 바르게 전해지는 전승 체계의 확립을 목표로 활동해 왔다. 이번 공연은 그 목표가 무대에서 실체를 갖추는 순간으로, 한국춤의 ‘이미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생성되는 역사’임을 증명했다. 100년의 몸이 말하는 춤의 정신은 오늘을 딛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